'운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6.16 배려 by 大建

배려

2013. 6. 16. 19:02

따뜻한 배려

 

시골에 살다가 4년 전 처음 대도시 대구에 갔을 때 나는 손잡이를 꽉 잡지 않으면 온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달리는 버스 때문에 한동안 공포에 떨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잠을 잔 나는 아예 늦을 각오를 하고 22번 버스에 올랐다.

여느 때처럼만 달려 주면 지각은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기대하면서. 그런데 기사아저씨는 내 기대와 달리 제 속도를 지키면서 천천히 달리는 것이었다. 왜 매일 빨리 달리던 버스가 오늘따라 제 속도로 달리는지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올랐다. 십 분쯤 지났을까. 이제 아저씨는 아예 자전거보다도 훨씬 더 느리게 운전을 하는 것이었다. 뒤쪽에 서 있던 나는 답답한 마음에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왔다. 출근시간이라 버스를 뒤따르던 차들이 빵빵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버스 앞쪽으로 나갔을 때 나는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내가 탄 버스 앞에 어떤 할아버지가 짐이 가득 실린 자전거를 힘겹게 몰고 가는 것이었다. 그 할아버지의 뒤를 따르면서 기사아저씨는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천천히 운전하고 계셨던 것이다. 오 분쯤 그렇게 달렸을까. 뒤에서 빵빵대는 경적소리를 들은 할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시더니, 놀란 표정을 짓고는 이내 아저씨에게 인사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길 한쪽으로 비켜 주셨다.

그때서야 기사아저씨는 제 속도를 내면서 승객들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아유, 죄송합니다. 길이 너무 막히네요."

그뿐,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었다. 버스 뒤칸에 있던 사람들은 한마디씩 불평을 했지만, 조금 전의 그 광경을 본 앞자리 승객들은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다. 바쁘게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그 기사아저씨의 느긋하고 따뜻한 배려는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었다. 그날 나는 지각은 했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버스, 운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부  (0) 2013.06.16
발상의 전환  (0) 2012.06.15
불평등  (0) 2012.02.22
분노  (0) 2011.10.27
병자성사  (0) 2011.04.12
Posted by 大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