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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05 인생 by 大建
  2. 2011.04.15 고통 by 大建

인생

2012. 12. 5. 14:56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시드니 해리스는
친구와 함께 길을 가는 도중,
가판대에서 신문을 한 부 골랐다.

가판대의 주인은 차갑고 무뚝뚝했다.
해리스의 질문에도 퉁명스럽게 답했다.
해리스는 가격을 치르고
'고맙습니다.' 라고 아주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역시나 가판대의 주인은
거들떠보지도 대꾸하지도 않았다.

"저 사람 태도가 너무 불손한데."

잠시 후 해리스는 친구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늘 그래."

"그런데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왜 그에게 친절하게 대했나?"

친구의 질문에 해리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왜 내 행동이 그 사람 태도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하지?"








인 생

 

어느 해 미국의 각 일간지와 방송은 한 운동선수의 자살사건으로 떠들썩한 적이있었다. 케네스 라이트라는 그 선수는 스카이 다이빙, 권투, 사냥, 레슬링 등 모든 운동경기에 뛰어난 기량을 보여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레슬링 경기 도중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목 이하의 신체를 움직이지 못하고 말았다. 담당의사들은 그가 언젠가는 강인한 체력과 의지로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는 얼마 후 절친한 두 친구에게 자기를 한적한 숲 속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들이 사라진 숲 속에 혼자 남은 그는 손가락을 간신히 움직여 품안에 있던 권총을 꺼내들었다. ''하는 한방의 총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지고 새들이 날아올랐다. 케네스는 그렇게 2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며칠 후, 짐 멕고완이라는 또 다른 운동선수에 대한 기사가 일간지와 방송 보도되었다. 휠체어를 탄 짐의 사진 밑에는 '하반신 마비 스카이 다이버, 포코노 산을 뛰어내려 목표지점에 정확히 내려앉다.'라는 짤막한 글이 쓰여 있었다. 이 장애인 선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그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속속 밝혀졌다. 그는 음식도 직접 만들고 옷도 손수 빨아입고 또 집안 청소도 직접 했다. 그리고 장애인 차를 몰고 그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으며 스포츠에 관한 책도 몇 권이나 썼다. 한 번은 한 기자가 자살한 케네스를 떠올리며 왜 권총을 선택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물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카이 다이빙을 하기 위해 타고 간 비행기에 나의 실망과 좌절, 침울과 절망을 함께 실었습니다. 그리고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그것들을 모두 날려보냈죠.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해를 암흑 속에서 좌절하며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의 인생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가능한 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을 한 그때부터 나를 이기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자살)







세상에서 가장 재수없는 사나이

 

미국의 주간지 {글로브}는 최근 호에 '미스터 불운'이라는 제목하에 미국에서 가장 재수없는 사나이를 뽑아 발표하였다. 영예(?)1위는 뉴욕에 살고있는 로렌스 헨러티라는 목수였다. 그는 현재 심한 폐병으로 집안에 들여 놓은 산소탱크로 호흡하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집 밖으로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그를 돌봐줄 아내마저 떠나고 없기때문에 그는 더더욱 불행해 보인다.

건장한 중년의 사내인 로렌스에게 처음 불운이 닥친 것은 그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1985년이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는 이 건설현장에서 전기감전사고를 당해 거의 죽다 살아났다. 이후에도 그는 같은 감전사고를 두번이나 더 겪었다. 로렌스는 보상을 받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했는데 그 변호사가 사고로 죽고 말았다. 다시 고용한 변호사 역시 제대로 사건을 처리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세번째 변호사는 로렌스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 아내를 데리고 멀리 떠났다. 그 일로 괴로와하던 로렌스에게 또 다시 불운이 닥쳐왔다. 암선고를 받은 것이다. 치료를 위해 약을 투여받자마자 그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일주일만에 겨우 깨어나보니 그는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암선고는 의사가 간질환을 잘못 판단해서 내린 오진이었음이 밝혀졌다.

한 기자기 그의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산소튜브로 숨을 쉬며 지난해 9월에 당한 사고를 설명했다.

"간단한 접촉사고가 일어났죠. 구겨진 차 밖으로 나오려는데 한 젊은이가 다가오더군요. 저는 괜찮다며 손을 가로저었는데 갑자기 총을 들이댔어요. 그래서 250달러를 주고 목숨을 구했죠."

그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나보다 더 불행하고 운이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난 행복한 편이죠."

넉살졸게 웃는 로렌스를 바라보며 기자는 {글로브}지가 미스터 불운을 다시 뽑아야 할 것이라고 중얼거렸다.(행운, 불운, 행복)






시냇물이 소리를 내는 이유

 

어느 유치원에서 소풍을 갔습니다.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시냇물은 왜 소리를 내며 흘러가요?"

아이의 질문에 선생님은 시냇물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정말 시냇물은 '졸졸' 정겨운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소풍에서 돌아온 선생님은 이 책 저 책을 들추며 그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시냇물이 소리를 내는 것은 물 속에 돌멩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들쭉날쭉한 돌멩이가 있기 때문에 시냇물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이 우리의 인생도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곱고 성숙한 인격은 고난의 돌멩이와 함께 해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닐까요...

인생의 돌멩이들을 바르게 보는 우리네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고통, 고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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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大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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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2011. 4. 15. 18:12



소나무의 가르침

소나무 씨앗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바위틈에 떨어지고 다른 하나는 흙 속에 묻혔다.

흙 속에 떨어진 소나무 씨앗은 싹을 내고 쑥쑥 자라 났다.그러나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은 조금씩 밖에 자라지 못 하였다.

“날 보라니까. 나는 이렇게 크게 자라는데, 너는 왜 그렇게 조금씩 밖에 못자라니?”

바위틈의 소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이깊이 뿌리만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비바람이 몰아쳤다. 태풍이었다.

산위에 서 있던 나무들이 뽑히고 꺾여 지고 있었다.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소나무는 꿋꿋이 서있는데 흙속에 서 있는 나무는 뽑혀 쓰러지고 말았다.

“왜 내가 그토록 모질고 아프게 살았는지 이제는 알겠지? 뿌리가 튼튼하려면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거야.”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는 일은 모두 고통의 순간을 거친 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통의 저 끝 한 자락에는 기쁨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슴 한 켠에 희망의 보금자리를 틀어쥐고 살아갈 수 있답니다.


닭과 독수리 

닭과 독수리는 위험 앞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폭풍이 몰려오면 닭은 몸을 날개에 묻은 채 숨을 곳을 찾는다. 그러나 독수리는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편다. 그리고 태풍에 몸을 싣고 유유히 날아올라 안전지대로 향한다.

인생의 폭풍을 만날 때 사람도 두 유형으로 나뉜다.

고통스러운 일, 억울한 일, 괴로운 일이 닥치면 몸을 숨기는 ‘닭형 인간’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담대하게 대처하는 ‘독수리형 인간’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항상 ‘독수리형 인간’이다. 시련을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의 인생여정에는 고난의 가시밭길이 그치질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담대하게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

서양 속담에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사나운 바람으로 인해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전했다. 모진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며 자란 나무는 좋은 목재가 된다. 믿음은 우리를 나약한 닭에서 강한 독수리로 바꾸어놓는다


무거운 짐의 복


하루는 새 한 마리가 하느님께 물었습니다. “하느님은 왜 무거운 날개를 두 개씩이나 양 어깨에 달아놓으셨습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날 수 있는 것은 그 무거운 날개 때문이란다” 우리는 하늘을 날기 원하지만 무거운 날개는 싫어합니다. 무거운 짐을 싫어합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짐이 무거워 이제 죽여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들은 그 짐 때문에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선교사 한 분이 아프리카로 선교를 갔습니다. 원주민들과 함께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원주민이 큰 돌을 선교사 가슴에 안겨주었습니다. 자신들은 큰 돌을 머리에 이거나 가슴에 안고 강을 건넜습니다.

그 선교사는 그 이유를 강 중간쯤 왔을 때 알았습니다. 강 중간쯤에 급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만약 무거운 돌이 없었다면 급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무거운 짐이 자신들을 살린다는 지혜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볍고 편한 것만이 행복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때로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고 침체의 강을 건너게 하시는데 그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짐을 벗어던져라


옛날에 한 젊은이가 아주 커다란 봇짐을 지고 고생스럽게 먼 길을 걸어 무제 대사를 찾아갔다. 젊은이는 대사를 보자마자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대사님, 저는 조금 전까지 고통스럽게 고독과 싸우며 오랫동안 먼 길을 걸어서 아주 피곤합니다. 신발은 다 헤졌고 양쪽 발은 온통 상처투성이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왜 아직까지 제가 가야 할 목표를 찾을 수 없는 겁니까?" 그러자 무제 대사가 물었다."자네, 그 봇짐 속엔 무엇이 들어 있는가?"

"이것은 제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 안에는 제가 시련과 좌절을 겪을 때마다 늘 함께했던 고통, 상처, 눈물, 고독, 괴로움 등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무제대사는 조용히 젊은이를 데리고 강가로 나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반대편 강가에 내리자 대사는 젊은이에게 말했다. "이 배들 들고 가게."

"농담이시죠? 이렇게 무거운 배를 제가 어찌 들고 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무제대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 말이 맞네, 젊은이. 강을 건너는 사람에게 배는 꼭 필요한 것이지. 그러나 강을 건넌 뒤에는 배를 버려야 한다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짐이 될 뿐이지."

젊은이는 지금까지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길을 떠났다.


석상 오동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드는 나무는 오동나무입니다. 오동나무는 가볍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물에 쉽게 젖지 않고 불에 쉽게 타지 않아 가구를 만들기에 적합한 나무입니다. 그래 옛 어른들은 딸을 낳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지요. 딸이 시집을 갈 때쯤 오동을 베어 가구를 만들기 위한 혼수용 나무였습니다. 딸아이가 시집을 갈 만한 나이에 가구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자랐으니 그만큼 오동은 빨리 자라기도 했습니다. 오동나무로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들 때 오동나무를 켜서 바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켠 뒤 5년 동안을 비와 바람과 눈에 말렸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먹어야 비로소 악기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5년 여 세월 동안 자연에 풍화하며 자신의 몸 속에 박힌 진을 모두 빼내야 제대로 소리를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동나무라 해서 다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오동이 따로 있었는데 모진 세월을 견딘 오동일수록 소리가 아름답습니다. 오동 가운데서 석상오동(石上梧桐)을 최고로 치는데, 석상오동이라 함은 바위에서 자라 고사한 오동을 말합니다. 기름진 밭둑에서 뒤뜰에서 키 자랑하듯 쑥쑥 자란 오동이 아니라,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겨우 겨우 자라다가 끝내는 말라죽은 오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나온다는 것입니다. 힘겨운 세월을 이긴 촘촘한 나무 결에서 울려나오는 그윽하고 아름다운 소리, 고통이 컸던 만큼 그가 내는 소리가 아름답다는 사실이 귀하게 다가옵니다. 비록 오늘 우리 삶이 힘겹다 할지라도 바위틈에서 자라 고사한 석상오동이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밑동이 까지는 감나무에 많은 열매가 달리는 것처럼, 고난을 통해 우리 삶이 더욱 그윽해지기를, 더 귀한 열매를 맺는 삶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상어의 고난이 주는 교훈


영국 사람들이 한창 싱싱한 청어를 좋아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살아 있는 청어는 굉장히 비싼 값에 거래됐습니다. 고기잡이 선원들은 청어를 산 채로 육지까지 가져오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청어는 워낙 성질이 급해서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한 지혜로운 선원이 청어 수족관 안에 상어를 한두 마리 넣어보았습니다. 순간 상어가 청어 몇 마리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청어가 상어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 다녔습니다. 그러는 동안 배는 육지에 도착했고 청어는 모두 살아 있었습니다. 지금도 청어잡이 어부들은 이 방법을 통해 청어를 산 채로 가지고 온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상어와 같은 고난이 모순처럼 다가와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해주십니다. 우리도 고난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더 웃고 승리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래, 사흘간이다

어느 마을에 늘 행복한 할머니가 한 분 살았습니다. 그 할머니는 배운 것이 별로 없고 살림도 가난하기는 했지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늘 밝고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만 만나면 덩달아 즐거워지고 행복해졌습니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그토록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한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지요. 그래서 나도 어려움이 닥치면 ‘그래, 사흘이다. 사흘만 참고 견디자.’ 그렇게 생각하며 참다보면 어려움들이 지나가지요.“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고민하며 걸었던 사흘 길 모리아 산에서 준비하시는 하느님을 만났듯이, 히즈키야가 병이 나아 사흘 만에 성전에 올라갔듯이, 요나가 사흘 만에 고기 뱃속에서 토해져 나왔듯이, 에스델과 백성들이 사흘 기도로 승리했듯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듯이, 우리의 어려움은 사흘간입니다.

삶의 짐이 무겁게 느껴지고 생활이 힘들고 곤고하다면 주변이 어둡고 절벽 같다면 이렇게 외쳐봅시다. “그래, 딱 사흘간이다.”



고통이 주는 선물


도스토예스프스키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의 고통이었다.

로트레크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를 경멸 덩어리로 만들었던 난장이라는 고통이었다.

생텍쥐페리를 위대하게 만든 것도 그를 일생 동안 대기 발령자로 살아가게 한 평가 절하의 고통이었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것도 끊임없는 여인들과의 실연과 청신경 마비라는 음악가 최대의 고통이었던 것이다.

고통은 불행이나 불운이 결코 아니다. 고통이란 도리어 행복과 은총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변제물인 것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행복하다면 그것은 곧 불행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불행하다면 그것은 곧 행복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아를 불사를 용광로 속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며, 용광로 속에서 신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은으로 새롭게 빚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암석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히말라야 근처에 위대한 성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위대한 스승 밑에 젊고 똑똑한 제자가 생겼습니다. 젊은 제자는 간절하게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하고.

그때마다 스승은 "그래 내가 가르쳐 주마.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세월이 흘러 1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어느 날 스승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제자를 데리고 숲속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너에게 고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 내 뒤를 따르라" 하시고는 정신없이 숲 속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달리던 스승은 큰 아름드리 나무를 끌어안고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는 나무에 매달린 스승을 떼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나무에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무가 스승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도리어 나무를 잡고 놓지 않고서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는 스승에게 나무가 스승을 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승님이 나무를 잡고 놓지 않는 것이니 나무를 잡은 손을 놓으라고 하니 스승은 마지못해 나무를 놓으면서

"제자야 바로 이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란다" 하고 일러 주셨습니다. 이 때 제자는 고뇌에서 벗어나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물질과 명예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물질과 명예를 붙잡고 놓지 못하고 괴로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위를 드신 하느님

꽃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꽃줄기를 일직선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잘라야 한다.

그러면 물을 흡수하는 면적이 훨씬 넓어져서 싱싱한 꽃을 오랫동안 볼 수 있다.

병에 약한 꽃나무는 줄기를 대각선으로 자르고 그 자리를 불로 태운다.

불로 태우면 물을 흡수하는 힘이 강해지고 나무의 부패도 막아 주기 때문이다.

병든 꽃에 가위를 대지 않으면 그 꽃은 곧 시들어 버리고 주변의 꽃들에게 병을 옮기게 된다.

그래서 노련한 정원사는 나무에 가위질을 해야 할 때를 안다. 하느님이 사람을 훈련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은 한 인간을 성숙한 인격체로 만들기 위해 줄기를 자르는 아픔을 주신다.

그것이 부족할 경우에는 불에 태우는 따끔한 고난도 주신다. 역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역경 없는 인생은 건조하다. 바다에 적당한 파도가 있어야 윈드 서핑을 즐길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고난은 필요한 아픔일 뿐이다. 고난이 두려워 피하려는 사람에게 역경은 거대한 파도처럼 두렵게 느껴지는 법이다.


힘들다고 생각될 때
보디빌딩 하는 사람들은 근육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낄 때까지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 과정을 거친 연후에야 근육의 세포가 팽창되기 때문이지요.

누구의 삶에나 여러 장애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힘이 드는" 정도에서 멈추면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도저히 못 참겠다 하는 순간을 한 번, 두 번, 세 번 넘어갔을 때

그때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힘들다고 느껴질 때 "아, 지금부터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뭔가 발전의 조짐이 보이는구나"고 기뻐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습관이며 생각하고 행동하기 나름입니다.

힘들다고 생각될 때 "이 순간을 극복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을 갖고 부딪혀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한 번 넘고 두 번 넘었을 때 성취감을 통해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힘이 든다고 포기하면 그 다음에 주어지는 것은 좌절감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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